순수한 눈이라는 오래된 착각

부르디외: 감도는 몸에 밴 계급이다

감도라는 거짓말 v1.6.1

감도 있는 사람은 자신이 그냥 잘 본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그냥'이 거의 언제나 그냥이 아니라는 데 있다. 취향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몸에 밴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이 지점을 건드린다. 사람은 자기 계급과 환경과 교육과 소비 경험을 몸에 새긴다. 무엇을 편안하게 느끼는지, 무엇을 고급스럽다고 느끼는지, 어떤 말투를 자연스럽다고 느끼는지, 어떤 공간에서 어색하지 않은지. 이 모든 것이 취향을 만든다.

문화자본은 돈처럼 노골적이지 않아서 더 잘 숨는다. 어떤 전시를 알고, 어떤 브랜드 이름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어떤 와인을 부담 없이 주문하고, 어떤 잡지의 문체를 흉내 낼 수 있는 능력. 이것들은 취향의 이름으로 돌아다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훈련의 흔적이다.

그래서 계급적 감도는 특히 싸게 이긴다. 돈으로 산 것처럼 보이지 않고, 노력으로 배운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러운 눈처럼 보인다. 그 자연스러움이야말로 가장 비싼 훈련의 결과일 수 있는데, 감도병자는 그것을 타고난 판단처럼 행사한다.

감도 담론은 이 훈련을 순수한 눈으로 위장한다. 나는 그냥 좋아서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좋음'은 특정한 노출과 시간과 돈과 교육을 지나온 결과일 때가 많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취향은 조금 겸손해진다. 인정하지 않으면 감도는 계급적 꺼드럭이 된다.

이 책이 고급 취향을 죄로 몰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기 취향의 사회적 조건을 숨긴 채 그것을 보편 기준처럼 행사하는 태도다. 감도병자는 자신의 아비투스를 미학으로 착각하고, 타인의 낯섦을 수준 낮음으로 오해한다.

감도는 순수한 눈이 아니라 특정 계급의 훈련된 몸짓이다. 배어든 것을 실력이라고 우기는 순간, 취향은 사기가 된다.

Early Reader Feedback

원고 피드백 남기기

읽다가 헷갈린 곳, 더 듣고 싶은 사례, 동의하기 어려운 문장을 알려주세요. 공개 댓글이 아니라 저자에게만 전달되는 피드백입니다.

본문에서 문장을 드래그한 뒤 누르면 선택 문장이 함께 저장됩니다.

피드백 유형

BiteMark Press는 Cloudflare Web Analytics로 익명 트래픽을 보고, 동의한 경우에만 GA4와 Microsoft Clarity를 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