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없는 메시지는 약하다
공식 2: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는가
모든 마케팅은 야마다 v0.3.0
메시지가 약해지는 이유는 대개 좋은 말을 너무 많이 남기기 때문이다.
빠르게 가자. 품질도 챙기자. 고객 중심으로 하자. 브랜드도 중요하다. 효율도 보자. 팀워크도 놓치지 말자. 전부 맞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움직인다.
야마는 버릴 것을 정한다.
이번 메시지 이후 무엇을 덜 해야 하는가. 무엇을 더 이상 기준으로 삼지 않을 것인가. 어떤 고객을 쫓지 않을 것인가. 어떤 기능을 미룰 것인가. 어떤 표현을 버릴 것인가.
남길 것도 정한다. 무엇을 끝까지 반복할 것인가. 어떤 고객의 판단을 우선할 것인가. 어떤 증거를 쌓을 것인가. 어떤 문장을 모든 접점에 남길 것인가.
옐로 저널리즘: 야마가 윤리를 잃은 형태
여기서 옐로 저널리즘을 봐야 한다.
옐로 저널리즘은 단순히 "나쁜 기사"가 아니다. 조지프 퓰리처의 New York World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New York Journal이 벌인 발행부수 전쟁 속에서 자란 주목 설계 시스템이다. 더 큰 제목, 더 강한 감정, 더 자극적인 사건, 더 쉬운 악역, 더 선명한 분노. 독자가 신문을 집어 들게 만드는 모든 장치를 앞세운다.
이론적으로 보면 옐로 저널리즘은 세 가지를 한다.
첫째, 복잡성을 버린다. 사건의 여러 원인과 애매한 조건을 지우고, 한 방향의 분노나 호기심으로 접는다.
둘째, 감정을 남긴다. 놀람, 공포, 분노, 수치, 애국심, 연민처럼 즉시 반응하는 감정을 제목과 첫 문장에 올린다.
셋째, 유통을 목표로 사실을 재배열한다.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야마를 잡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팔리게 하기 위해 사실을 야마에 맞춘다.
그래서 옐로 저널리즘은 야마의 어두운 친척이다. 야마가 복잡한 사실 속에서 붙잡을 손잡이라면, 옐로 저널리즘은 손잡이를 먼저 만들고 사실을 끌고 오는 방식이다. 좋은 야마는 오디언스의 판단을 돕지만, 옐로 저널리즘은 오디언스의 반응을 수확한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우리는 옐로 저널리즘을 따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왜 작동했는지는 배워야 한다. 발행부수 전쟁의 신문은 인간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아주 잔인하게 실험했다. 큰 제목, 구체적 악역, 즉각적 감정, 반복 가능한 프레임, 한 문장으로 옮겨지는 사건 해석. 이것들은 오늘의 썸네일, 숏폼, 랜딩페이지, 세일즈 이메일에서도 여전히 작동한다.
그러므로 야마를 잡을 때 버려야 할 것은 복잡성이 아니라 불필요한 잡음이다. 남겨야 할 것은 조작된 감정이 아니라 판단을 돕는 중심축이다. 옐로 저널리즘은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잘못 고른 야마다. 감정은 남기고 윤리를 버렸다. 유통은 남기고 진실의 비례감을 버렸다. 그래서 강했고, 그래서 더러웠다.
프로파간다: 야마가 공론장을 점령하는 방식
옐로 저널리즘이 발행부수 전쟁의 산물이라면, 프로파간다는 공론장 전체를 다루려는 더 큰 기술이다.
월터 리프먼은 여론을 사람들이 현실 그 자체를 보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 그림을 통해 만든다고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복잡한 세계를 직접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의사환경, 즉 pseudo-environment를 만든다고 했다. 이 말은 야마에 중요하다. 오디언스는 제품, 사건, 조직, 시장을 직접 통째로 보지 않는다. 머릿속에 그려진 작은 세계를 보고 판단한다.
야마는 그 작은 세계의 중심축을 잡는 일이다. 윤리적인 야마는 의사환경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든다. 프로파간다는 의사환경을 특정 권력의 목적에 맞게 굳힌다. 둘 다 머릿속 그림을 다루지만, 하나는 판단을 돕고 하나는 판단을 점령한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이 지점을 더 노골적으로 밀고 갔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습관과 의견을 조직적으로 다루는 일이 피할 수 없다고 보았고, public relations를 동의의 공학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배울 점은 불편하지만 분명하다. 사람은 혼자 판단하지 않는다. 집단, 권위, 반복 노출, 상징, 매체, 유행, 전문가의 말 속에서 판단한다.
해럴드 라스웰은 선전을 더 기술적으로 본다. 프로파간다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표상을 조작해 인간 행동을 움직이는 기술에 가깝다. 말, 이미지, 상징, 적의 이름, 영웅의 얼굴, 통계, 지도, 구호가 모두 표상이다. 프로파간다는 그 표상을 재배열해 행동을 만든다.
Institute for Propaganda Analysis가 정리한 선전 장치들도 야마와 붙어 있다. 이름 붙이기, 빛나는 일반어, 권위 전이, 추천 증언, 평범한 사람 흉내, 카드 쌓기, 밴드왜건. 이것들은 전부 오디언스가 생각하기 전에 반응하게 만드는 장치다. "저쪽은 악하다", "우리는 자유다", "전문가가 말했다", "다들 하고 있다" 같은 문장은 판단을 여는 대신 판단을 대신한다.
요제프 괴벨스는 이 계보의 가장 더러운 끝에 있다. 나치 프로파간다는 야마가 윤리, 사실, 반대편, 인간 존엄을 버렸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메시지, 반복, 적 만들기, 감정 동원, 매체 장악, 타이밍, 사기 유지, 불리한 사실의 차단. 이것들은 강력했기 때문에 위험했고, 위험했기 때문에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
여기서 배울 것은 조작법이 아니다. 방어선이다.
좋은 야마는 오디언스가 현실을 더 잘 보게 만든다. 프로파간다는 오디언스가 현실 대신 그림을 믿게 만든다. 좋은 야마는 반대편을 지우지 않는다. 프로파간다는 반대편을 악으로 만든다. 좋은 야마는 증거로 버틴다. 프로파간다는 반복으로 증거를 대신한다. 좋은 야마는 행동을 제안한다. 프로파간다는 정체성과 공포로 행동을 강제한다.
그러므로 프로파간다에서 배워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메시지는 오디언스의 머릿속 그림을 현실에 가깝게 만드는가, 아니면 우리에게 유리한 환상으로 고정하는가.
이 메시지는 판단을 돕는가, 판단을 대신하는가.
이 메시지는 증거를 쌓는가, 반복으로 증거를 흉내 내는가.
이 메시지는 강점을 선택 이유로 번역하는가, 적과 공포를 만들어 선택을 강제하는가.
버릴 것이 없는 메시지는 대개 선언문이다. 남길 것이 없는 메시지는 대개 분위기다.
야마는 선택이다. 선택은 늘 비용을 만든다. 그 비용을 피하면 메시지는 아름다워질 수는 있어도 강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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